20세기 초만 해도 특수한 계층을 제외한 보통의 일본인에게 해외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취재나 해외견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문인의 해외여행기는 일본인이 세계를 이해하는 주요 매개였다. 나쓰메 소오세키(夏目漱石)1867~1916. 본명은 킨노스케(金之助). 근대 일본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평론가 의 「만한 이곳저곳(滿韓ところどころ)」은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후, 다른 세 편의 수필과 함께 『4편(四篇)』1910년 5월 이라는 이름으로 순요오도오(春陽堂)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텍스트는 러일전쟁1904~1905 후 나쓰메 소오세키의 만주 인상을 기록한 것이다. 일본 지식인의 오리엔탈리즘적 경향을 보여주는 이 글은 다음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시대에 일본 근대지식인은 중국과 아시아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세계화된 오늘날,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에는 왜 분규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만주시찰의 배경

이 여행기의 제목은 「만한 이곳저곳」이지만 글 속에는 작자의 만주 견문만 있을 뿐 한국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어 흥미롭다. 원인은 아사히신문 연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만한 이곳저곳」은 정확히는 ‘만철(滿鐵) 이곳저곳’라 불렀어야 마땅하다. 여행기의 서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남만철도회사라는 게 도대체 뭘 하는 곳인가?” 하고 진지하게 묻자 만철 총재도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정말 바보구만!” 코레키미(中村是公)1867~1927, 메이지(明治)겾맛抉楮?大正)겮楮읏?昭和)기에 활약한 일본의 관료, 제2대만철 총재에게 바보란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리 겁날 것도 없던지라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코레키미는 웃으면서 “이번에 나와 함께 가볼 텐가?” 하며 말을 꺼냈다.

여기서 언급된 만철 총재는 바로 나쓰메 소오세키의 대학 예과 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나카무라 코레키미로, 만철여행은 전적으로 그의 초청과 협찬 속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만철은 일본제국주의의 특수한 식민지기구였다.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분할점령을 위한 러일전쟁의 종결 후, 포츠머스조약에 따라 일본은 창춘(長春)에서 뤼순(旅順)까지 동청철도(東淸鐵道)의 구간과 그 부속권리를 획득했다. 만주식민지개발과 약탈을 위해, 일본정부는 1906년 이 반관반민(半官半民)의 국책공사를 설립했는데, 교통겚ㅋ?공업겭燦?이민 개발과 심지어 부속지역의 도시건설과 일본 식민지개척의 권한까지 포괄하고 있었다. 초대 총재는 당시 식민지 타이완의 민정관이었던 고토오 신페이(後藤新平)1857~1929, 메이지겾맛抉楮픸쇼오와기에 활약한 의사, 정치가. 타이완총독부민정장관, 만철초대총재, 제7대 도쿄시장, 도쿄방송(현 NHK방송) 초대총재 였다. 소오세키 청년시절의 절친한 친구인 나카무라 코레키미는 만철 설립 당시 초대 부총재였으며, 1908년 고토오의 후임으로 만철 총재가 되었다. 그는 고토오 신페이의 타이완민정관 시절부터 그의 오른팔로서 신임을 얻고 있었다. 나카무라 코레키미는 만철 창설 당시 일본의 만주식민정책을 추진한 관료였다. 만철 제2대 총재가 된 후에는 고토오 신페이의 “문화를 가장한 무장” 통치원칙에 따라 만철식민사업을 추진했다. 일본 본토에 선전사업을 강화하고 인재들을 설득하여 본토인의 만주이민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나쓰메 쿄오코(夏目鏡子) 나쓰메 소오세키의 부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나카무라가 나쓰메 소오세키를 초청하여 만주와 한국을 유람하도록 했던 목적은 바로 만한식민지 선전사업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夏目鏡子, 「漱石の思い出」, 文春文庫

러일전쟁 시기, 도쿄대학 영문학 강사였던 나쓰메 소오세키는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와 중편 「도련님(坊っちゃん)」에서 풍자와 유머의 필치로 일본사회를 해부하고 일본현대문명을 비판했다. 이 작품들이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면서 그는 겸업작가로 문단에 나오게 된다. 1907년에 그는 강단을 나와서 아사히신문사에 들어가 전업작가가 되었다. 학문의 전당을 뛰쳐나와 대중매체에 투신하는, 당시로서 매우 도발적인 이 행동은 한바탕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뒤이어 나쓰메 소오세키는 아사히신문에 『우미인초(虞美人草)』, 『광부(坑夫)』, 『산시로오(三四郞)』 등 여러 편의 장편소설을 연재했는데, 더욱 성숙해진 문체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나쓰메 소오세키가 만한여행을 떠난 1909년은 문단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진 해였다. 그 해 1월, 그는 문부대신의 초청으로 문사간담회(文士懇談會)에 참석하여 정부의 문예정책에 대한 제안을 했다. 5월에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종합잡지 <타이요오(太陽)>에서 실시한 ‘창업 20주년 기념사업 제2회 15인 작가 투표’에서 나쓰메 소오세키가 최다 득표를 했다. 같은 해 초, 나카무라 코레키미가 7년 만에 나쓰메 소오세키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반년 뒤에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나쓰메 소오세키의 7월 31일자 일기에 나카무라 코레키미가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만주에 신문사를 창간하려는데 자네가 도와줄 수 있겠나?’” 8월 6일 일기에는 도쿄 이이구라(飯倉)의 만철지부로 가 코레키미와 만났던 일을 적고 있다. 이 만남에 뒤이어 8월 13일, 나쓰메 소오세키는 이토오 코오지로오(伊藤幸次郞)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거기에는 나쓰메 소오세키가 만철에 와서 신문사업을 맡아줬으면 하는 나카무라 코레키미의 말이 적혀 있었다. 이 시기 수차례 나카무라로부터 편지를 받았지만, 편지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추측컨대 나쓰메 소오세키에게 만철에 와서 만주일일신문(滿洲日日新聞)이나 다른 신문사업을 도와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8월 17일의 일기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이토오 코오지로오가 찾아와 만주일일신문 사업에 관해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적혀있다.『漱石全集』 新書版 第25卷, 岩波書店, 1957  다음날 나카무라 코레키미가 사람을 보내 만주에 함께 갈 것인지를 물어오자, 나쓰메 소오세키는 서신을 보내 승낙했다.

이로부터 몇 가지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나카무라 코레키미는 나쓰메 소오세키를 초청하여 만철의 신문선전사업을 맡기고자 했지만, 소오세키가 바로 승낙하지 않자 우선 만주시찰에 초청한 것으로, 이 역시 만철선전을 위한 것인 셈이다. 소오세키의 만철여행은 표면상으로는 단순히 친구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가벼운 견학이었지만, 사실은 만철총재의 광고선전전략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문화인의 초청시찰여행이 만철의 관례행사로 자리잡았다.

연재는 왜 중단되었나?
1909년 9월 2일 도쿄를 떠난 나쓰메 소오세키는 3일 아침 오오사카상선회사의 테쓰레이마루(?丸)호에 승선하여 따롄(大連)으로 향했다. 한 달 반 동안 따롄, 뤼순(旅順), 슝위에청(熊岳城), 잉코우(營口), 탕강즈(湯崗子), 펑톈(奉天), 푸순(撫順), 창춘(長春), 하얼빈(哈爾濱), 안동셴(安東縣) 등 만철노선에 인접한 지역들을 순서대로 참관했다. 그 뒤 조선으로 향해, 평양, 경성, 인천, 개성, 부산 등지를 유람하고, 10월 17일 도쿄로 돌아왔다. 도쿄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10월 21일, 아사히신문에 여행기 「만한 이곳저곳」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해 말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이 때문에 「만한 이곳저곳」에는 여정의 절반만이 기록되어 있다.

나쓰메 소오세키는 왜, 「만한 이곳저곳」의 연재를 중도에 그만두었을까? 이 문제는 줄곧 학자들간의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제1세대 나쓰메 소오세키 연구의 권위자인 코미야 토요타카(小宮豊隆)1884~1966가 내린 해석은 글 속에 이미 쓸 내용을 모두 다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오세키를 만주와 한국유람에 초청해 준 나카무라 코레키미의 우정에 대해 이미 보답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코미야는 나쓰메 소오세키의 「만한 이곳저곳」을 개인적인 감상을 서술한 여행기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오히려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 암살사건이 「만한 이곳저곳」의 중도하차의 간접적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일례로, 일본학자 아오야기 타쓰오(靑柳達雄)는 「소오세키와 시부카와 겐지(澁川玄耳) - 「만한 이곳저곳」 절필 이유에 관하여」『漱石硏究』 第11期에서 「만한 이곳저곳」이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전 과정을 상세히 고증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쓰메 소오세키는 곧바로 만한견문의 연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못된 10월 26일, 이토오 히로부미가 하얼빈 기차역에서 조선의 애국의사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신문의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만한 이곳저곳」의 연재면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이 뉴스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아사히신문 사회부장 시부카와 겐지가 1개월 전 자신의 조선방문기를 연재하기로 결정했다.

11월 5일 아사히신문의 제6판 1면에 「무서운 조선」 1회가 실렸고 1개월간 연재되었다. 이토오 히로부미 암살 이후, 현장보도 수법으로 조선을 묘사한 이 여행기는 당시 일본의 조선정책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궁금해 하던 독자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반면 나쓰메 소오세키는 여전히 유머 섞인 한적한 필치로 만주견문을 연재하고 있었다. 푸순까지의 이야기를 쓰고 뒤이어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막 쓰려고 하던 무렵, 그는 이미 자신의 조선견문이 겐지의 문장과 같은 시사성을 지니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욱이 같은 아사히신문에 연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아깝기는 하지만 조선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학자 윤상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이토오 히로부미 암살사건 이후 일본 국내에 팽배한 군국주의 분위기에 직면한 나쓰메 소오세키는 연재 초기부터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던 터라, 자신의 조선견문을 어떻게 묘사할지 다소 막막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滿韓旅行」, 『夏目漱石事典』, 學燈社, 1990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연재 중단 덕에 소오세키는 독자들로부터 받을 비난을 운좋게 피할 수 있었다.

현대화된 왕국, 만철
나쓰메 소오세키의 일기와 「만한 이곳저곳」의 텍스트를 대조해봤을 때, 이 여행기가 자신의 여행에 관한 진실된 기록이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여행기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명한 평론가 요시모토 타카아키(吉本隆明)는 「만한 이곳저곳」과 소설 「도련님」이 판에 박은 듯 유사하며, 나쓰메 소오세키와 친구 나카무라 코레키미의 관계는 「도련님」의 주인공과 수학교사 ‘멧돼지’의 관계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해석했다. “「만한 이곳저곳」은 매우 독특한 글이다. 여행기 같지도 않고 자유분방한 수상록 같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견문록 같지도 않다. 깊이 있는 사상을 보여주고 있지도 못하다. 여기에서 그는 「도련님」의 문체와 같은 문장의 골계미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사실 회고문이라면 한편으로 회고하면서 한편으로 서술하는 문체, 바로 그런 문체여야 할 것이다.”『漱石の巨きな旅』, NHK出版, 2004

요시모토 타카아키는 「만한 이곳저곳」을 한 편의 회고문으로 보면서, 만주 각지에서 만난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대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읽고 있다. 확실히 나쓰메 소오세키는 사생문의 묘사기법을 다시 한번 발휘하여 자신의 감상을 표현했다. 만철총재 나카무라 코레키미, 만철의 위탁으로 만몽(滿蒙)목축업을 조사했던 농학교수 하시모토 사고로오(橋本左五郞), 따롄해관(海關) 관장 타치바나 마사키(立花政樹), 뤼순경찰총장 사토오 토모쿠마(佐藤友熊), 만철 펑톈사무소의 사토오 록코쓰(佐藤肋骨) 등, 여행기에 등장하는 이들 인물들은 모두 나쓰메 소오세키의 청년시절 친구들이다. 비록 친구들과의 해후 장면이 조금은 조소 섞인 어투로 서술되어 있지만, 만철과 만주식민지 요직에 올라 일본제국의 만주건설에 땀흘리는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권력체제를 증오하던 ‘도련님’, ‘멧돼지’ 들이 「만한 이곳저곳」에서는 소오세키와 한데 어울려 권력체제에 순응하며 일본제국의 만주식민지 약탈에 힘을 합한다. 나쓰메 소오세키는 만철의 만주개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갔다. 철도건설, 공산품개발, 항구건설, 농산품가공, 전력연료, 자원개발, 도시계획, 노동자복지 등의 각 방면에서 만철사업 전반을 묘사하고 있다. 글 속에 묘사된 전기화된 공장과 공원, 중앙실험소, 직원주택 등 현대화된 시설들은 모두 일본 본토보다 선진화된 것이었다. 그는 현대화된 만철왕국의 건설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후에 아사히신문사 기자 토리이 소센(鳥居素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일본인은 진취적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 왕성하진 않지만 각 영역에서 발전하는 모습과 그에 호응한 경영자의 기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만한을 두루 돌아본 후 저는 일본인이 분명 장래의 희망을 가진 국민임을 느꼈습니다.”『漱石全集』 제29권, 岩波書店, 1957 이로부터 나쓰메 소오세키가 만한여행을 통해 자신의 민족주의 의식을 새롭게 재발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소오세키의 아시아 인식
나쓰메 소오세키의 민족주의 의식은 서양인, 아시아인과의 접촉 속에서 부단히 강화되었다. 「만한 이곳저곳」에는 서양인과 중국인을 대하는 그의 대조적인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일찍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나쓰메 소오세키는 일본 도처에 고취되어 있는 ‘야마토타마시(大和魂)’일본혼를 풍자한 문명비평가였다. 그런데 서양인이나 중국인을 만날 때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차별의 구조를 서술 속에 노출하고 있다. 만한여행기에는 따롄으로 가는 배 위에서 선장과 나눈 대화가 적혀 있다. 왕년에 조타수로 미국항해를 하던 선장이 어느 유럽인 부인 옆에 앉자, 그 부인이 황인종과 앉기 싫다며 바로 자리를 떠났던 일화가 있다. 선장의 경험은 나쓰메 소오세키의 런던유학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문학론』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신사들 속에서 나는 이리떼 속의 강아지 같은 처량한 생활을 했다.”같은 책, 제18권, 1957 유럽인의 차별을 직접 경험했던 나쓰메 소오세키는 만주로 가는 선상에서 일본인의 문화적 동질감을 새삼 확인했던 것이다.

「만한 이곳저곳」 6절에는 만철의 야마토호텔(大和賓館)에서 한 영국인과 나눈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가 일본인이라는 말을 듣자 영국인은 바로 말투를 바꾼다. 글 속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내가 일본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바로 나를 치켜세우며, 자기가 40년 전 요코하마(橫濱)에 간 적이 있는데 일본인은 예의바르고 정성껏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모범 국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선장이 차별받은 이야기와 비교해 보면, 나쓰메 소오세키가 이 서양인의 말을 기록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만철총재의 손님으로서 그는 동포의 대접뿐만 아니라 서양인의 찬사까지 들었던 것이다. 그 심층에는 전승국가의 국민으로서 서양인 앞에서 가슴을 펴고 당당해하는 심리가 있다. 뒷부분에는 서양인에 아첨하는 나카무라를 비판하고 그가 미국함대를 위해 거행한 환영무도회에 참석하기를 거절한 일화, 그리고 뤼순탄광에서 모두가 영국영사와의 동석을 꺼린 이야기 등이 기술되어 있다. 이런 에피소드들을 종합하면, 나쓰메 소오세키가 구미열강에 대한 민족주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쓰메 소오세키는 같은 황인종인 중국인에게 과연 어떤 시선을 던지고 있었을까? 골계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기술된 「도련님」에서는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이 조소와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어, 어떤 차별의 흔적도 없다. 그런데 역시 조소와 유머의 문체로 쓰인 「만한 이곳저곳」에서는,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로중국인의 인상을 묘사하고 있어, 그 독서 효과는 「도련님」의 경우와 크게 다르다. 그는 글 속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중국인은 “청나라 되놈(淸國?兒)”이라 부르고, 러시아인은 “로스케(露助)”러시아인에 대한 비속어. 이 말은 러일전쟁 무렵부터 대대적으로 사용되었다. 러시아인을 뜻하는 러시아어 русский로부터 생겨난 말로, 사실 본래의 말뜻만 놓고 본다면 별다른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라 부른다. 일본인과 달리 성과 이름이 나오는 중국인은 한 사람도 없다. 만주에 도착해서 받은 첫인상은 부둣가에 모여 있는 쿨리(coolie)힘든 노동을 하는 노동자. 인도, 동남아, 중국 등지에서 사용된 말로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부르던 말.들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만 놓고 봐도 더러웠지만 둘이 모이면 더욱 봐주기 힘들었다. 이렇게 잔뜩 모여 있으니 꼴사납기 그지없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인력거꾼과 마부의 “더러움, 무질서함, 덜떨어짐”이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해 낸 골계어 “메이도오렌(鳴動連)”일본어로, 직역하면 진동과 큰 소리를 내는 놈들이라는 뜻. 의역하면 벌집 쑤셔놓은 것 같이 시끄러운 놈들이라는 의미이라는 말로 그들을 묘사하고 있다.

따롄에 온 뒤 중국인과의 교류에 별 뜻이 없었던 그의 글 속에 중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는 거의 드물다. 나카무라 코레키미가 중국인 마부에게 지나치게 예의바르게 대하는 것을 눈에 거슬려 하는 부분이나, 러일전쟁 유적을 참관할 때 보물을 도굴하는 중국인, 온 몸에 땀냄새로 가득한 궤도차 차부, 마차를 좌충우돌로 몰아대는 마부, 손님은 신경쓰지도 않고 차를 끌고 달리는 데만 신경쓰는 인력거꾼 등. “지저분함”과 “거칠음”은  그들에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형용사였다.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더러운 도시와 냄새나는 상점, “시큼짭짜름한” 물, “쾨쾨한 냄새”를 풍기는 여관, “더러운” 극장주인집 객실 등으로 표현된다. 한마디로, 중국인은 위생적이지 않고 문명인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서슴없이 “중국인은 과연 지저분한 민족이야” 라고 말한다. 우둔함과 간사함 역시 중국인 묘사에 주로 쓰인 단어였다. 「만한 이곳저곳」의 한 구절에는 나쓰메 소오세키 일행이 선양(瀋陽) 베이릉(北陵)을 참관하고 돌아오는 길에 겪은 일화가 나온다. 마차에 치어 다친 한 노인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길에 앉아 있었고 다리에 피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개떼처럼 모여 구경만 하고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다친 노인의 표정은 멍하게 굳어있었고, 둘러싼 사람들 역시 모두 무관심한 모습이었다. 여행가이드 역시 “나”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현장을 떠나버리고 만다. 이 에피소드는 루쉰(魯迅)1881~1936이 묘사한 ‘환등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나쓰메 소오세키와 루쉰이 보여주는 메세지는 전혀 다르다. 루쉰은 국민의 마비된 의식에 대해 “그 불행을 슬퍼하되 투쟁하지 않음에 분노” 함으로써 국민성 개조의 투지를 고무하여 약소민족의 독립자강을 제창했다. 반면, 나쓰메 소오세키는 초연한 시선으로 이렇게 말한다. “여관 입구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면서, 나는 잔혹한 중국인과 인연을 끊고 말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쓰메 소오세키의 이런 태도로부터, 구미열강의 차별을 겪은 일본 엘리트 지식인이 중국인이나 아시아인에게 거침없이 차별의 시선을 던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소오세키의 아시아 민중에 대한 차별관념은 줄곧 일본 근대지식인의 주류의식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함으로써 이런 의식은 점점 희석되었다.

역사의 예감
만주 여행에서 나쓰메 소오세키는 새로운 풍경을 발견한다. 초가을 따롄의 밤하늘에는 일본 본토에선 볼 수 없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태양은 일본의 그것보다 눈부셨다. 만주의 석양은 그를 감동시켰다. 만주에서 그는 옥토천리(沃土千里)를 실감했다. 더욱 그를 흥분시킨 것은 남화(南畵)수묵화의 풍경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일본과는 다른 “중국의 풍경”이었다. 제38절에서 현실 속 풍경인지 환상 속 풍경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고 묘사한 데서 보이듯이, 만주의 풍경은 그를 정신의 고향으로 귀환시켰다. 그는 온천명승지에서 중국의 산수를 즐기고 중국 대지가 선사하는 음식들을 맛보았다. 오히려 그를 감탄케 한 것은 이런 만주의 대지 위에서 나고 자란 중국인들이 “자고이래로 랴오허(遼河)의 흙탕물을 마시며 안분자족 속에 자손을 번창하여 지금의 번영을 이룬” 점이었다. 그는 중국 대지에 잠재된 에너지를 느꼈고 또 일본 만주식민의 위기를 예감했다.

「만한 이곳저곳」에서 보여주는 나쓰메 소오세키의 만주 인식은 복잡하고, 심지어 두려움마저 보여준다. 러일전쟁이 남긴 처참한 폐허가 채 정리되지 않았고 뤼순 앞바다의 해저에는 가라앉은 배와 어뢰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흉가에 남은 전쟁에 대한 슬픈 전설들이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만주의 옥토천리가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 위에는 국제세력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구미 열강은 간섭을 놓지 않았고 러시아는 실패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일본은 세계의 압력에 직면해 있었다. 청나라는 현지 민중의 저항과 마적들의 소요에 직면에 있었고, 이는 만철 건설에도 위협적이었다. 그는 중국 쿨리의 노동 현장에서 “이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초군담(漢楚軍談)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의 일대결전을 다룬 이야기을 연상했다. 옛날 한신을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게 했던 사내도 분명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분을 참고 자중하며 꿋꿋이 견뎌내는 중국 민중의 모습 속에서, 그는 중국인을 결코 얕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세기의 예언가답게 그는 어쩌면 일본이 만주식민지의 수렁 속에 빠져들게 될 것임을, 그리고 결국에는 역사의 처벌을 받게 될 것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만한 이곳저곳」의 중단 역시 역사의 필연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夏目漱石的滿洲游記」<讀書>(2006年 11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