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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통권 : 19 / 년월 : 2010년 1,2월 / 조회수 : 2824
유재하가 남긴 것

짧지만 아름다웠던 삶
사랑, 이 말처럼 진부하면서도 동시에 가슴 설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이 넘쳐나고 우리는 의도와 상관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이라는 말을 접하곤 합니다. 어떤 사랑이든지 나름대로의 진정성은 있겠습니다만, 넘쳐나는 사랑의 홍수 속에서 사랑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사랑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입니다. 사랑을 빙자한 거짓말이 난무하고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사랑들이 횡행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오래된 사진첩의 빛바랜 사진마냥 어슴푸레 희미한 형체를 띠고 있을 뿐입니다.





유재하(柳在夏, 1962~1987)의 처녀 앨범이자 유작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1987)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의 황홀함과 이별의 아픔, 그리고 재회의 기쁨을 진솔하고도 영롱한 언어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 그의 앨범입니다. 지금 다시 유재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서 입니다. 빛바랜 낡은 사진을 채색하기 위한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그의 앨범을 통해 퇴색해버린, 그래서 잊었거나 잃어버린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습니다.

1962년 6월 6일,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유재하는 은석초등학교와 삼선중학교, 대일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키보드 주자로 2개월 정도 활약하였고, 1986년엔 ‘김현식과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알았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사랑하기 때문에>는 직접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노래까지 하여, 이른바 ‘1인 밴드’ 시대를 본격화시킨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데려간다고 했던가요? 유재하는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의 나이 겨우 25세였습니다. 어쩌면 맑고 순수한 그의 영혼은 애초부터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죽은 후 한동안 거리에 울려 퍼졌었던 <지난날>과 <사랑하기 때문에> 등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7년 봄에 발매된 그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에는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3중주로 연주되는 밝은 선율의 경음악 <미뉴에트Minuet>를 제외한 나머지 8곡은 가사가 있습니다. 이 8곡은 순차적으로 사랑, 이별, 재회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랑>과 <그대 내 품에>가 사랑의 황홀함을 표현하고 있다면, <텅 빈 오늘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리워진 길>, <지난날>은 이별의 상황과 이별 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울한 편지>와 <사랑하기 때문에>는 재회와 그를 통한 더 큰 사랑의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곡을 배열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노래의 가사를 따라가면,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기본적으로 발라드 앨범입니다. 느린 템포의 사랑 노래를 의미하는 발라드에서 가사가 선율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대체로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가사를 중심으로 그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겠습니다.



사랑, 동화 같은 세계
<우리들의 사랑>과 <그대 내 품에>는 연애의 기쁨과 사랑의 황홀함을 동화적으로 혹은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따르릉 소리 전화를 들면 들려오는 그대 목소리/ 보고픈 마음 가눌 수 없어 큰맘 먹고 전화했대요/ 햇님이 방실 달님이 빙긋 우리들의 사랑을 지켜봐주는 것 같아요/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나 얼마만큼 그대 안에 있는지/ 그 입술로 말해보세요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해 왔다고 말이에요


만나면 때론 조금만 일에 화를 내고 토라지지만/ 그래 그 다음엔 화해해 놓고 돌아서서 나 혼자 웃네/ 새들이 소곤 꽃들이 수근 우리들의 사랑에 질투라도 하는가 봐요/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나 얼마만큼 그대 안에 있는지/ 그 입술로 말해보세요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해 왔다고 말이에요

- <우리들의 사랑>


사랑의 서막을 알리는 것과 같은 힘찬 드럼 소리로 시작하는 <우리들의 사랑>은 그야말로 알콩달콩한 연애의 행복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장밋빛이라죠? 햇살은 오직 자신들을 위해 내리비치고, 달님마저 미소를 띠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예전에 예사로 보아 넘겼던 자연은 자신들의 사랑을 축복하거나 질투하는 인격체로 다가옵니다. <우리들의 사랑>에서 감지되는 동화적인 세계는 바로 이러한 자연물의 의인화에서 비롯합니다. “햇님이 방실 달님이 빙긋”이나 “새들이 소곤 꽃들이 수근”에서처럼 햇님, 달님, 새, 꽃은 연인의 사랑을 축복하거나 질투하는 인격체로 표상됩니다. 게다가 방실, 빙긋, 소곤, 수근과 같은 음성상징어의 활용은 <우리들의 사랑>을 더욱 경쾌한 노래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깨가 자르르 쏟아질 것 같은 연애의 즐거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별 것 아닌 일에 토라졌다가 화해하고,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혼자서 웃어버리는 것은 연애에 빠진 대개의 사람들이 거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죠. 이 노래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또한 화자는 사랑이라는 것이 ‘표현’하는 것이고 ‘확인’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이 그대 가슴에 얼마만큼 있는지 느껴보고, 그 입술로 오래 전부터 사랑해왔다고 말해 달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사랑>이 연애에 심취한 연인들의 모습을 예쁘게 그렸다면, <그대 내 품에>는 사랑을 좀 더 환상적으로 표현한 노래입니다.



별 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그대 꽃 위에 안고 싶어라/ 밤하늘 보면서 느껴보는 그대의 숨결/ 두둥실 떠가는 쪽배를 타고 그대 호수에 머물고 싶어라/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술잔에 비치는 어여쁜 그대의 미소/ 사르르 달콤한 와인이 되어 그대 입술에 닿고 싶어라/ 내 취한 두 눈에 너무 많은 그대의 모습/ 살며시 피어나는 아지랑이 되어 그대 곁에서 맴돌고 싶어라/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어둠이 찾아들어 마음 가득 기댈 곳이 필요할 때/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 <그대 내 품에>


<그대 내 품에>만큼 사랑을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가 있을까요? “별 헤는 밤이면”이라는 첫 부분을 듣자마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별 헤는 밤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대’의 음성을 들었던가요? <그대 내 품에>는 사랑에 빠진 화자가 은유를 통해서 ‘그대’와 하나가 되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단순히 표현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넘어서 사랑에 흠뻑 빠진 화자는 ‘그대’와의 합일을 염원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한 염원을 결코 세속적이거나 진부한 언어로 말하지 않습니다. 서정적인 언어에 마음을 담아 표현합니다.


화자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수사법은 은유법입니다. 화자는 ‘꽃가루’가 되어 ‘그대’라는 꽃 위에 앉고 싶어 하고, ‘와인’이 되어 ‘그대’ 입술에 닿기를 바라며, ‘아지랑이’가 되어 ‘그대’ 곁에 맴돌기를 바랍니다. 2절에서는 술에 취한 화자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화자는 ‘그대’와 마주 앉아 지금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아름다운 ‘그대’는 술 취한 화자에게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대’의 미소가 아름답다고 하는 대신에 “술잔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답다”고 합니다. 또한 술에 취해 ‘그대’가 흔들려 보이는 것을 “그대의 모습이 너무 많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보다 낭만적인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대 내 품에>는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환상의 세계를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한 노래입니다.


노래 속의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다짐합니다. 설사 ‘그대’가 자신의 곁을 떠나더라도 끝까지 따르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혹시 ‘그대’에게 어둠이 찾아들어서 기댈 곳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품을 내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기댈 곳이 되어주는 것임을, 그리하여 사랑이란 ‘기대서기’의 다른 말임을 <그대 내 품에>는 영롱한 언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그렇게 환상적이고 행복하기만 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이별이 불쑥 찾아오고 화자는 상심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제 화자가 이별을 맞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별, 자기 성찰의 시간
유재하의 앨범에서 이별을 다루고 있는 노래는 총 네 곡입니다. 그 중에서 <텅 빈 오늘밤>이 이별 당시의 상황과 화자의 마음을 표현하였다면,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이별 후에 화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싸늘한 눈빛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는 떠나가고/ 영문도 모르는 채 그곳에 한동안 서있었네 우두커니/ 그게 우리의 끝이었나 사라지는 모습 바라볼 수밖에 없었나/ 오늘밤 그대 떠나고 쓸쓸한 오늘밤/모두 흥겨웁게 노래 부르며 춤추는데/나는 어이해 홀로 외로울까/ 그대 없는 텅 빈 밤


잊으려 애를 써도 한 가닥 미련이 나를 잡고 놓지 않네/ 행여나 돌아올까 서러운 눈물이 가득 고여 목이 메고/ 그게 우리의 끝이었나 초라한 눈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나/ 오늘밤 그대 떠나고 허전한 오늘밤/ 모두 흥겨웁게 노래 부르며 춤추는데/ 나는 어이해 홀로 외로울까/ 그대 없는 텅 빈 밤

― <텅 빈 오늘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둘 사라져가고/ 쳇바퀴 돌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가네/ 거짓인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 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 내곤 또 잊어버리고/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텅 빈 오늘밤>은 이별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노래입니다. 화자는 지금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대’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 한마디 없이 떠나간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이별 통보를 받은 화자는 그저 한동안 꼼짝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화자가 있는 공간은 무도장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은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이별 통보를 받은 화자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적막감과 고독감을 느낍니다. 화자는 군중 속에서 더 큰 고독감을 느끼는 것이죠. 그러나 <텅 빈 오늘밤>이 이별의 상황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량하거나 처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것이 빠른 템포와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감정의 추스름을 통해 이별의 상황을 관조적으로 보려고 하는데요,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가요심의기구에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내 마음에 비친 네 모습’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였을 때, 유재하는 ‘네 모습’이 아닌 ‘내 모습’을 꼭 써야 한다고 했다 합니다. 그 사실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나, 유재하가 의도한 것은 분명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일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별을 하면 화를 내고 상대방을 원망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기에 부산합니다. 하지만 화자는 ‘그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대신에 자신의 마음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즉 이별을 자기 성찰의 계기와 반성의 시간으로 삼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꿈은 사라지고 방황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황의 시간은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화자는 비록 방황하고 아프고 괴롭지만, 주위의 소란스러움에 동참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한 것입니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 이별을 성숙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화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여진/ 잡힐 듯 말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 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가 듯 떠나는 이는 제 갈 길을 찾았네/ 손을 흔들며 떠나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돼 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 <가리워진 길>


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 아픈 기억 찾아 헤매이는 건 왜일까/ 가슴 깊이 남은 건 때늦은 후회/ 덧없는 듯 쓴 웃음으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네/ 예전처럼 돌이킬 순 없다고 하면서도/ 문득문득 흐뭇함에 젖는 건 왜일까/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세상사람 얘기하듯이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다시 못올 지난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그리움을 가득 안은 채 가버린 지난날/잊지 못할 그 추억 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날

언제 어디 누가 이유라는 탓하면 뭘 해/ 잘했었건 못했었건 간에/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세상사람 얘기하듯이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다시 못을 지난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가버린 지난날/ 잊지 못할 그 추억 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날/ 생각 없이 헛되이 지낸다고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지난날

― <지난날>


때론 삶의 굽이마다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마다 이정표를 보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가리워진 길>은 사랑하는 임을 잃고 방황하는 화자가, 아득하고 막막한 자신의 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이별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낸 후에도 만약 사랑이 남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가리워진 길>에서도 여전히 ‘그대’를 생각하는 화자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화자는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자신의 가려진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에게 주워진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을 주고, 가려진 길을 터 달라고 ‘그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자는 절대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바라듯이 ‘그대’에게 가려진 자신의 길을 열어달라고 간망합니다.


이문세가 백보컬(back-vocal)로 참여했었던 <지난날>은 이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화자가 지난날을 회상하고 추억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픔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아픈 기억을 찾아 헤매고 후회하고 쓴 웃음을 짓기도 하죠. 하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화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리워진 길>에서 갈구하는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지난날>에서는 체념하는 화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념은 절망이나 포기와는 다릅니다. 최선을 다한 후의 체념은 희망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말합니다. “잊지 못할 그 추억 속에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겠다”고요. “그대와 나의 지난날을 더욱 새롭게 만들겠다”고요. 그렇게 <지난날>은 화자와 ‘그대’와의 재회를 넌지시 암시합니다.


재회, 아름다운 복종
<우울한 편지>와 <사랑하기 때문에>는 재회의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입니다. 사랑과 이별을 거쳐 다시 만난 화자와 ‘그대’는 더 큰 사랑을 느끼게 되죠. 단조와 장조를 넘나들며 변조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는 재즈풍의 <우울한 편지>는 ‘그대’가 화자에게 준 편지와 그에 대한 화자의 답장을 싣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도 다시 돌아온 ‘그대’에 대한 화자의 다짐이 담긴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내려간 글씨/ 한줄 한줄 또 한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 없는 맘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아는가요 내겐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진 이젠


 ― <우울한 편지>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젠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 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어제는 지난 추억을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 <사랑하기 때문에>



<우울한 편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대와 만난 후, 화자가 ‘그대’의 편지를 받아서 읽는 부분과 그 편지에 대한 화자의 답장 부분으로 나뉘는 것이죠. 화자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그대’와 다시 마주합니다. 재회가 끝나고 헤어지려고 할 때 ‘그대’는 화자에게 편지를 건네줍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대’의 예쁜 글씨가 촘촘히 박힌 편지를 읽고 내용을 한줄 한줄 새기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답장을 노래로 대신합니다.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부터가 화자의 답장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항간에는 ‘나의 마음’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 맞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들어보면,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이 맞고, 이 부분부터 화자의 답장이 시작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그대’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면 서로를 믿자고 말입니다. 또 화자는 말합니다. ‘그대’가 어수룩하거나 나약하거나 강인하거나 지혜롭다거나 그 무엇이라도 관계없다고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진정한 사랑은 그 무엇과 관계없이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라는 것을 화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울한 편지는 이제 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울한 편지>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울한 편지>가 보여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앨범의 제목이자 타이틀곡이기도 하였던 <사랑하기 때문에>를 통해서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서 화자는 첫눈에 ‘그대’를 사랑하게 되었고 가슴에 수없이 많은 분홍빛 꿈을 키워왔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는 얼마나 아름답던가요? 해맑은 미소만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마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신비인 거죠. 그러나 이별과 더불어 세상은 무너지고 화자가 품었던 분홍빛 꿈도 푸르게 바래지고 맙니다. 허나,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바보처럼 ‘그대’도 잊지 못하고 추억도 잊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다가 문득 화자는 깨닫습니다. 화자 자신이 ‘그대’의 것임을요.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복종」이라는 시에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의 화자도 그렇게 아름다운 복종을 선택합니다. 그리하여 화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며 영원을 맹세합니다.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말이죠.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랑, 아름다운 복종을 부러 선택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사랑하기 때문에>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래식 악기로 연주한 아름다운 발라드의 선율에 실어서 말이죠.



불순의 시대에 순수한 사랑을 꿈꾸다
바야흐로 불순(不純)의 시대입니다. 나도 불순하고 너도 불순하고 사회도 불순하고 시대도 불순합니다. 모든 것이 불순한 시대에 살다보니 순수함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집니다. 유재하가 떠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다시 유재하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재하의 노래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감동을 자아내는 것도 노래가 보여주는 순수함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유재하가 부른 8곡의 노래를 사랑, 이별, 그리고 재회라는 차원에서 순차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노래 속의 화자와 유재하를 구별하기는 하였습니다만, 노래 속의 화자가 실제 유재하와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유재하가 자신의 사랑 얘기를 토대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듯이 유재하라는 실제 화자는 결국 노래 속의 화자와 겹쳐집니다. 그리하여 화자가 혹은 유재하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서로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고 이별을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는 현대의 짧고도 소란스러운 사랑과 대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유재하의 창법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습니다. 김정수 PD의 회상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에는 방송 심의 후에 신인 가수 오디션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개는 형식적인 것이었는데 유재하는 ‘가창력 부족’과 ‘복장 문제’로 오디션에서 탈락하였다고 합니다. 솔직히 유재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힘이 넘친다든지, 노래를 정말 잘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점이 유재하의 목소리가 지니고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평범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 꾸밈없고 소박한 목소리가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유재하의 노래가 질리지 않는 것은 그의 편안한 목소리에서 연유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제 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포스터]


그의 음악이 남긴 족적은 실로 대단합니다. 일단 그는 대학에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았던지라 클래식을 바탕으로 퓨전 재즈와의 다채로운 결합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른바 고품격 발라드를 출현시켰다고도 하는데요,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 오보에, 첼로 등의 악기를 다채롭게 사용한 <가리워진 길>이나 <사랑하기 때문에>는 작은 관현악 연주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작가주의만을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음악은 예술성과 대중성이 얼마나 행복하게 조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예술성만 추구하면 대중과 멀어지고 대중성만 추구하면 그 생명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유재하의 노래는 예술성과 대중성, 그에 더해 실험성까지 추구하였고 이를 모두 성공시킨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대중음악계에 끼치고 있는 영향은 여전합니다. 유재하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가 이루고자 했던 음악의 꿈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그의 가족을 비롯하여 그를 아끼고 사랑하였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재단법인 유재하음악장학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관한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1989년 1회를 시작으로 하여 2009년 10월 2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거쳐 간 가수들만 하더라도 1회 대상 수상자인 조규찬과 4회 대상 수상자인 유희열을 위시하여, 이한철, 심현보, 정지찬, 고찬용 등이 있습니다. ‘싱어 송 라이터’의 등용문인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우리 대중음악계에 실력 있는 음악인을 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유재하가 대중음악계에 남긴 성과를 보면 첫째, 작사, 작곡, 편곡, 연주까지 혼자서 도맡아 하는 ‘1인 밴드’의 시대를 열었고, 둘째, 예술성과 대중성, 그리고 실험성을 동시에 추구하여 성공하였으며, 셋째, 아름다운 가사를 통해 서정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발라드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유재하가 떠난 이곳에서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불순의 시대에 순수한 열망으로 소망하는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믿고 싶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맑고 순수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저를 스쳐간, 제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여전히 사랑한다고요. 다른 그 어떤 이유도 아닌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심의평-음악평론


유재하와 현대대중음악 현실 비교


응모작들은 각각 주제의 시의성 측면에서 돋보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시대적 비교해석을 가미해서  완성도를 높인 점이 평가 받을 만하다. 특히 「유재하론 : 사랑,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가사분석에만 치중해있다는 한계를 보이지만, 유재하와 현대대중음악의 현실을 비교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시의성과 참신성에서 뛰어난 「벙어리 인어공주들에게 고함-마녀가 되어 진정한 발화를 실현한 그녀, 오지은에 대하여」는 기승전결 구조에 의거한 학술형 논문을 써낸 것이 아쉽다. 이것만 아니라면 수작이 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대중음악의 쏠림 현상」은 시의적으로 탁월하고 통계를 동원해서 결론을 유출하고 있지만, 논리의 짜임새가 떨어진다. 「‘롤링스톤즈’는 누구인가?」는 상식 수준의 글에 머물고 있다. 「암흑에서 광명으로-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은 참신하지만 결론이 마니아적 기호에 그쳤다. 좀 더 사회·문화적 해석을 가미했다면 좋은 비평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비평을 해도 좋다는 허락이 필요


장유정


대중음악이 좋아서, 대중음악에 미쳐서 대중음악을 연구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살아 숨 쉬는 음악 현장으로까지 저의 관심을 확장시키고 싶었지만 조심스러웠습니다. 비평을 해도 좋다는 일종의 허락과 이제부터 비평을 시작하겠다는 신고식이 필요했습니다. 이번 인천문화재단의 플랫폼문화비평상은 제가 비평을 해도 좋다는 일종의 허락과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재하의 노래에 관한 글로 상을 받아서 더없이 기쁩니다. 꼭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삶이 팍팍해질 때마다 조용히 다가와 번번이 저를 위로해주었던 그의 노래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가뜩이나 늘어나는 오물 때문에 숨 막혀 하는 지구별에 쓰레기를 하나 더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늘 반성하고 공들여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자 약력
張攸汀 1972년 서울생.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 저서로 『오빠는 풍각쟁이야-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등. zaayou@empal.com
글쓴이 : 장유정
작성일 : 20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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