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버터플라이는 이른바 ‘인디 1세대’다. 이는 3호선 버터플라이(이하 3호선)가 델리스파이스, 크라잉 넛, 허클베리 핀, 어어부 프로젝트, 언니네 이발관 등의 밴드와 동시대에 음악을 시작한 밴드라는 뜻이다. 이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우선 3호선의 음악적 여정을 간략히 따라가 보자. 3호선의 첫번째 정규작 은 2000년에 발매되었다. 이른바 당시의 ‘인디 올스타’들이 참여한 음반이었고, 영미권에서 유행하고 있는 노이즈 록 스타일을 좋게 말하면 차용, 냉정하게 말하면 추종한 음반이기도 했다. 이 음반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 <꿈꾸는 나비>가 나오면서 다시 인기를 얻기도 했다. 두번째 음반 (2002)는 전작의 스타일을 좀 더 실험적으로 가다듬은 음반이었다. 소리를 다루는 테크닉은 눈에 띄게 늘었지만 재미는 확실히 덜했고 정서는 지나칠 정도로 침울했다.

마침내 2004년 밴드의 세번째 정규 음반 이 나왔다. 한국 록 음악의 유산들을 솜씨 좋게 재배치하고, 거기에 록 밴드의 형식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음악들을 만들어냈다. 전작에서 부족했던 청자와의 소통에도 성공했으며 음악 자체의 완성도 역시 탁월했던, 두말할 나위 없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최고작이었다. 그 와중에 리더인 성기완은 솔로 음반을 냈고, 다른 멤버들인 김남윤과 (지금은 탈퇴한) 휘루 역시 각자의 프로젝트 음반을 냈다.

그리고 이제, 2년에 한 번씩 음반을 냈던 이 부지런한 베테랑 인디 록 밴드가 근 5년 만에 새 음반을 냈다. 정규 음반이 아니라 EP(Extended Play)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음반라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총 다섯 곡에 20분 남짓한 이 음반에서 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건 ‘균형 잡힌 3호선’이다. 이 짧은 음반은 지금까지 3호선이 해 왔던 음악의 중간결산인 동시에 가장 정서적으로 호소력이 강한 소리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3호선이 1세대 인디 록 밴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벌어질 것 같던 시기에 수많은 ‘괴짜’와 ‘번득이는 감각’의 소유자들, 더불어 자칭 타칭 ‘천재’라는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혹은 무엇을 하는가? 3호선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신중하게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델리스파이스처럼 단숨에 귀를 사로잡거나 어어부 프로젝트처럼 파격적인 행보를 걷는 대신, 3호선은 사운드의 ‘텍스처(texture)’를 구축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게 이 밴드의 음악을 ‘지성적’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리더인 성기완의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이 촘촘히 쌓아올린 사운드의 층 사이에 스며들어있다. 그건 잘 될 때도 있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EP에서만큼은 잘 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음반의 모든 곡이 고루 훌륭하다. 간결한 록 기타 리프와 뿅뿅거리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적절히 어울리는 <티티카카>만으로는 3호선이 ‘최신 유행’을 따르려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이 밴드가 예전에 했던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음반의 중핵에 있는 두 곡 <무언가 나의 곁에>와 <깊은 밤 안개 속>이 전달하는 정서적 울림을 겪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렵다. 수수께끼 같은 가사와 매혹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무언가 나의 곁에>, 아마도 3호선 최고의 발라드이자 2009년의 가장 괜찮은 싱글 중 하나일 <깊은 밤 안개 속>, 침잠(沈潛)하는 듯한 남상아의 목소리가 유난히 빛을 발하는 ,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같으면서도 빼어난 구성력을 과시하는 <왠지. 여기. 바다> 모두가 기억할 만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앨범 <나인 데스 오어 어 밀리언>자켓]

아, 물론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이 전작 에서 보여주었던 도약에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관습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이 음반의 울림이 다른 생각을 막아버린다. 밤과, 겨울과, 도시와, 그리고 쓸쓸한 사랑에 이만큼 어울리는 인디 록 음반은 최근에 없었다. 아마 당분간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