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한반도를 직접 답사하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은 카토 쇼린진(加藤松林人, 1898~1983)의 회고전 <한국을 사랑한 화가－카토 쇼린진展>이 오오사카한국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한국의 전통 풍속을 담은 풍속화, 궁궐·전각을 그린 궁궐화, 그리고 백자나 꽃을 그린 정물화가 주를 이룬다. 풍속화의 경우, 일본의 전통 화법보다 오히려 신윤복(申潤福, 1758~?)이나 김홍도(金弘道, 1745~?)의 풍속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그가 한국전통미술 자체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토쇼린진]

하지만 카토 쇼린진(이하 카토)의 진면목은 건축화와 풍경화에서 보이는 역동적인 공간구성에서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을 주제로 한 작품은 기둥과 지붕 같은 구조물 때문에 화면이 단조롭게 획일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카토는 고 각도 사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그리는 기법와 저 각도 사물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그리는 기법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그림이 관람자를 둘러싸는 듯한 압도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 풍경화에서는 <강원도 총석정>에서 보이는 것처럼 마치 광각렌즈를 사용한 듯한 넓고 깊은 공간감각을 표현해내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산수화 개념을 따르면서 자유로움과 활달함이 공존한다. 바다로 가로막힌 열도국의 일본인이 동경해마지 않는 웅장한 한국의 자연을 화폭에 담고자 한 것이다.

카토는 1898년 토쿠시마현(德島縣) 아난시(阿南市)에서 태어났다. 그는 와세다대(早稻田) 예과에 진학하였지만 아버지의 일 관계로 스무 살이 되던 해 경성(현 서울)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화가 시미즈 토운(淸水東雲)에게 가르침을 받았다.1 그 후 그는 1945년 12월까지 27년간 조선에서 살았다. 

[강원도 총석정]

카토 쇼린진이라는 이름은 일본화단에서 거의 알려진 적이 없다. 그것은 그가 서양화가가 아닌 일본화가였다는 점과 작품 활동의 시작 장소가 일본이 아닌 조선이라는 ‘외지’였다는 점, 그리고 그가 스무 살이 넘어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제관계가 명확하고 일종의 장인정신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당시 일본전통화단에서는 어느 화파의 누구에게 몇 년 가르침을 받았는지가 중요시되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회화지도를 받고 일심으로 수행해야 인정받았던 일본화의 세계에서 카토와 같이 성인이 된 후 일본화를 시작하게 된 사람은 기량 면에서 제 아무리 우수했다 하더라도 취미생활로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아마추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당시 일본의 서양화단에는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붓을 잡기 시작한 사람이 흔했는데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일본정통화단에서의 특수성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당시 일본정통화단은 에도시대(江戶, 1603~1867) 이전의 화파 흐름이나 사제제도에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금강산]

현재 일본화단에서 카토의 존재는 거의 잊혀진 듯하지만, 조선에 있을 당시 매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1922년에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에서 매번 입선을 했고, 심사위원에까지 오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후진양성에도 열심이어서 많은 제자들이 조선미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작품 활동 외에도 신문과 잡지 등에 글을 쓰고 왕실에서 시강까지 했다고 하니, 당시 조선미술계의 정상에 오른 작가였던 것이다.

카토가 이렇게까지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활동무대가 조선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실력만으로 승부하려 하는 일본인들은 일본 본토를 떠나 조선이나 만주로 건너갔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인들에게 조선은 일본 본토의 복잡한 가치관이나 인간관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낙동강 전경]

미술사학에서는 일본인 화가들이 조선의 풍속이나 풍경을 그린 작품을 가리켜 “조선의 향토색”,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의 발로”라 분석하기도 한다. 작품에 목가적이면서도 후진적인 조선의 모습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조선에 대해 일방적으로 부여한 이미지라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이 점에서만 본다면 카토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비판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토가 조선에 실제로 거주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그의 작품을 단순히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으로 분석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재조선일본인들에게 조선은 타향이기도 했지만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그들의 시각은 여행 중의 짧은 시간 동안 본 이국적 이미지를 작품화 한 일본 본토 화가들과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일제시대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은 일본 본토에서 일종의 차별을 받고 있었다. 일본 본토야말로 순수한 일본인이 사는 곳이며 일본을 떠난 일본인은 “순수한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하는 차별과 멸시를 받았던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차별하는 입장이었지만,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본토의 일본인으로부터 차별받는 이중구조가 있었던 셈이다. 특히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은 일본을 모른다는 점에서 일본인으로서의 ‘순도’가 떨어진다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경성중학에서 바라본 백악]

재조선일본인은 패전 후, 조선에도 일본에도 설 자리가 없는 이른바 고향을 상실한 자들이 되었다. 카토도 일본으로 돌아간 후, 경력이나 실력과 관계없이 화가로서는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재조선일본인이 자기가 살았던 조선이나 조선인에 대한 애정을 표명하면 그것이 지배자의 입장에 선 오만이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틀리지만은 않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감동과 애정을 느낀 사실을,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부정해버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조선의풍습]

패전 후 일본과 한반도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는 카토의 작품세계를 깊이 이해한 사람이 재일한국인 강건영 박사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재일한국인 또한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부유하는 고향 상실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 개최는 의사이면서도 오랫동안 한국미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강건영 박사의 공로 덕분이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람들 앞에, 작품 속 한국의 산하는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카토가 화폭에 담은 조선의 땅, 사람들에 대한 감동과 애정을,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시켜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카토 쇼린진이라는 인물을 재평가한 것은 강건영 박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