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엑스포(Expo)는 1851년 영국의 알버트(Prince Albert, 1819 - 1861)공에 의해서 처음으로 창시되어 당시 ‘5대양 6대주에 유니언잭영국 국기이 24시간 항상 게양되어 있다’고 하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전성기에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전성기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외교경로를 통해서 25개국을 초청하고 30여 개의 식민지들도 엑스포에 참가시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해외여행은 고급관리들이나 부유한 상인들 이외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민선을 타고 북미대륙이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여행이라기보다 고국을 떠나 보다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1851년 런던엑스포는 세계를 지배하던 대영제국의 국민들에게 일생 동안 가보지 못할 미지의 나라들의 문화, 전통 그리고 특산품들을 국내에서 직접 체험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한편, 엑스포 전시장에 전세계를 압축하여 전시함으로써 대영제국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런던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엑스포가 대성공을 거두자 당시 열강들은 앞다투어 엑스포 개최에 열을 올렸다. 파리(1867), 시카고(1893)에 이어서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들은 엑스포를 도시발전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파리 같은 도시는 엑스포를 무려 다섯 차례나 개최하면서 도시를 정비하는 기회로 삼고 많은 건물들과 조형물들을 남겨 오늘날 파리의 대표적 상징물로 꼽히는 건축물이 많다. 1889년 파리엑스포 때 프랑스 철강업계가 철강제품의 우수함과 철 구조물 설계의 정교함을 효과적으로 전시하기 위해 당시 프러시아 출신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에게 설계를 의뢰한 에펠탑은 1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파리의 상징으로써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엑스포 개최 경쟁이 과열되면서 당시 국제사회의 주력 국가들 사이에서는 엑스포의 개최 빈도를 규제하고 엑스포의 규모나 개최기간 등을 규정하는 국제협약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된 것이 1928년 11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조인된 국제박람회에 관한 협약이며 이 협약에 따라 국제박람회기구(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 이하 BIE)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지금도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BIE는 엑스포의 개최 빈도와 규모 등을 관리하면서 회원국들의 투표에 의해 엑스포개최도시를 정기적으로 선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엑스포에 참가한 것은 1893년 미국 시카고엑스포였다.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게 위해서 개최된 시카고엑스포는 세계 72개국이 참가하여 6개월 동안 열린 대규모 행사였다. 참가국 수를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미국 정부와 엑스포 준비 관계자들이 외교 경로를 통해 집요한 설득을 벌였던 흔적은 한·미 외교 문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하튼 열악한 국가의 재정 형편에서도 우리나라는 전시 담당자 5명과 국악사 10명을 파견하고 8칸의 기와집을 지어서 관복, 도자기, 부채, 모시, 갑옷 등을 전시하여 우리의 전통과 특산품을 미국에 알리는 데 노력했다.

두번째로 엑스포에 참가한 것은 1900년 파리엑스포였는데, 이때도 프랑스는 외교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에 참가를 종용하고 끈질긴 설득작업을 벌였다.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당시, 일본에도 많은 부채를 지고 있던 우리로서는 엑스포 참가는 꿈 같은 이야기였지만 프랑스와의 우호관계를 고려하여 파리엑스포 참가를 결정한다. 당시 고종(高宗, 재위1864∼1907)이 우리나라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후 독립국가의 의지를 국제적으로 선양할 시점이기도 해서 독립된 대한제국관을 건설하고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고종황제 특사 겸 대한제국관 명예위원장에 민영찬(閔泳瓚, 1873~?), 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 겸임공사 이범진(李範晉, 1852~1910) 등을 대표단으로 파견했고 파리 주재 대한제국 총영사 샤를 룰리나와 미브렐 백작이 재정 후원을 맡았으며 페레(E. Feret)가 전시관 설계를 맡았다는 것도 외교문서와 기타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900년 파리엑스포의 대한제국관에는 인삼, 섬유, 도자기 등 우리나라의 특산품들은 물론 전통 무기, 의상, 악기 등도 전시되었었는데, 엑스포가 끝난 후 대부분 프랑스 정부에 기증되었다. 전시물품 중 우리나라의 고유 악기인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등 13점은 100여년 동안 파리 인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2004년 프랑스 국립음악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국운이 쇠퇴할 때 참가했던 엑스포 전시품들이 한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보존되다가 제자리를 찾아가 100년 만에 다시 전시되고 있는 사실은 엑스포와 우리의 운명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시카고와 파리 엑스포 참가를 끝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의 엑스포 참가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주권을 잃은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는 물론 광복 후 혼란기와 한국 전쟁의 격동기에 엑스포 참가는 우리들에게 힘겨운 일이었고 우선순위적 행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광복직후인 1948년 런던올림픽을 시작으로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의 헬싱키올림픽에도 수십 명의 선수들을 파견하고 1956년의 멜버른 1960년의 로마올림픽에는 100여 명의 선수들을 파견했던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엑스포 참가는 올림픽보다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위선양 효과나 국민의 관심과 호응을 얻는 데 엑스포는 우리와 거리가 멀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1893년 시카고엑스포와 1900년 파리엑스포도 내막적으로 개최국의 집요한 참가 설득이 주효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반세기 이상의 공백기를 거쳐서 우리 스스로가 참가를 결정하고 자력으로 참가한 엑스포는 1962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엑스포였다. 우리가 최초로 참가했던 엑스포도 미국 도시였고 광복 후 처음으로 참가한 엑스포 역시 미국 도시였다는 사실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근대사의 경제교류관계를 함축적으로 시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1962년 시애틀엑스포 참가 이후 우리나라는 BIE 공인 엑스포에 몇 차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 계속 참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엑스포 참가가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출주도 경제개발의 효과적 추진에 도움이 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우리의 주력수출상품을 세계에 알리는 효과적인 장으로 엑스포를 활용한 측면도 있었다.
 BIE협약 제1조는 ‘엑스포는 명칭에 관계없이 일반대중의 계몽을 그 주된 목적으로 하는 박람회를 말한다. 엑스포에서는 문명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전시할 수 있고 또한 특정분야 또는 여러 분야에서 인류의 노력으로 성취한 발전상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BIE의 규정은 일부 선진국들을 우주과학이나 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미래를 전시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들의 수준에서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고 수출상품을 선전하고 특산품을 판매하는 장소로 엑스포를 활용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60년대 말부터 언론사 특파원으로 또한 국제담당 데스크로서 세계 도처에서 개최된 엑스포의 한국관을 둘러보고 기사를 쓰면서 느낀 점은 천편일률적인 한국관의 분위기와 전시품목들이었다. 그나마 값싼 특산품들이 많이 팔려나가고 관람객들이 몰려들면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던 한국관 직원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값싼 노동집약적 제품들을 전시해 놓고 국악과 함께 부채춤 등을 선보이던 것이 한국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러한 엑스포 한국관의 모습은 1980년대부터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주제를 가지고 한국관을 꾸몄고 수출상품은 엑스포보다는 각종 교역박람회에서 전시되는 등 교통정리가 본격화된 것이다.‘한국의 새로운 지평’(1985, 미국 낙스빌), ‘과거를 소중히, 미래를 향하여’(1985, 일본 츠쿠바), ‘약동하는 한국’(1985, 캐나다 밴쿠버), ‘1988 올림픽의 장’(1988, 호주 브리스베인), ‘발견의 동반자’(1992, 스페인 세비야), 「생동하는 바다를 삶의 원천으로」(1998, 포르투갈 리스본), 「물 생명의 원천」(2000, 독일 하노버), 「생명의 빛」(2005, 일본 아이치) 등을 주제로 한 한국관은 엑스포에서 가장 인기있는 국가관 중의 하나였으며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의 면모를 보여주는 본보기로 호평을 받았다. 엑스포를 통해 우리나라의 위상이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국민적 자긍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한국관의 질적 변화와 함께 우리 스스로가 엑스포를 유치하여 성공시킨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최된 1993년 대전엑스포는 BIE의 공인 엑스포로서 1천 4백만 명이 관람하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우리나라를 첨단과학기술국가로 또한 대전을 과학연구단지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BIE 규정에 따르면 공인 엑스포는 5년마다 개최되는 등록 엑스포(Registered Exhibitions)와 등록 엑스포 사이에 1회씩 개최되는 인정 엑스포(Recognized Exhibitions)로 나누어진다. 인정 엑스포는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개최주기와 규모도 등록 엑스포보다는 짧고 적은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5년마다 광범위한 주제를 선택하여 개최규모도 제한이 없는 등록 엑스포보다 한 등급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등록 엑스포였던 2000년 하노버엑스포보다는 1998년 리스본인정엑스포가 더 성공적이었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가 개최했던 대전엑스포와 지난해 극적으로 유치를 성공시킨 여수엑스포가 인정 엑스포라고 해서 위축되거나 스스로를 비하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우리가 어떻게 주제를 정하고 이 주제를 엑스포를 통해서 확산시키며 얼마나 많은 관객을 유치하고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느냐가 엑스포 성공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BIE의 공인 엑스포인 이상 등록이냐 인정이냐를 따질 이유도 없으며 중요한 것은 엑스포의 치밀한 준비와 성공적인 개최에 있다. 교통과 통신수단이 열악하던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광범위한 주제로 5년마다 열리는) 엑스포는 여행의 대중화와 통신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그 매력을 차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엑스포를 통해서 외국을 체험하고 이국 정서를 느껴본다는 것은 아마도 20세기의 유물로 남을지도 모른다. 반면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 공해, 자연보호 같은 지구촌 공통의 특정주제를 설정하여 인류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인정 엑스포가 오히려 21세기에는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말 열강들의 독점물이었고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개최하던 엑스포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가했던 우리나라가 20세기 중반부터는 경제개발에 시동을 건 독립국가로서 독자적인 의지와 판단으로 엑스포에 참가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사실이었다.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는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고도성장을 계속한 일본 경제를 과시하는 계기였지만 우리에게는 일본과의 격차를 스스로 확인하고 인정해야만 했던 뼈아픈 엑스포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일본이 했던 것처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유치와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선진국 문턱에 오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19년 후 여수에서 두번째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처럼 엑스포와 오랜 역사적 인연을 맺고 엑스포와 함께 국가발전의 이정표를 세우고 국위선양의 능동적인 계기로 삼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국운의 쇠퇴와 외세의 침략을 목전에 두고 엑스포에 참가했던 우리가 이제 두 번째로 엑스포를 개최하게 된 사실 자체가 엑스포와 대한민국의 끈질긴 인연과 함께 우리 모두가 협력하여 엑스포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