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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떠난 자와 남은 자
통권 : 54 / 년월 : 2015년 11,12월 / 조회수 : 1943
송기역, 『6월의 아버지 - 박종철이 남긴 질문, 박정기가 답한 인생』, 후마니타스. 2015.

떠난 자와 남은 자

(서평) 송기역, 6월의 아버지 - 박종철이 남긴 질문, 박정기가 답한 인생, 후마니타스. 2015.

 

김대현

 

 

잊힌 사람들

 

언젠가 나는 이소선(전태일의 어머니)과 배은심(이한열의 어머니)이 수면제를 반으로 쪼개 나눠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 알을 다 먹으면 너무 독해서란다. 세상에 수면제를 나눠 먹는 우정이 어디 있을까? (6)

 

이런 내용으로 시작하는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가슴속에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어 도중에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덮어야 했다. 슬픔 아래에 있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슬픔의 심연을 만난 것이다. 이제는 시효로 소멸된 줄로만 알았던 채무가 그 동안의 이자를 붙여 다시 고지서를 들고 불쑥 나타난 모양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마지막까지 읽어야 했다. 당시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 지금 와서 할 수 있는 일 또한 아픔을 들어주는 일뿐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불법적인 물고문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의 삶을 다룬 유월의 아버지를 읽는 내내 들었던 감정이다.

 

자신을 헌신해 세상을 바꾸는 열사들의 삶은 그 정신의 염결성과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커다란 희생으로 인하여 공공의 유산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열사의 유지를 기억하기 위해 다양한 유·무형의 사업을 통해 그들을 기념한다. 그렇게 열사는 비교적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두의 기억 속에 영원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 기억 속에 함께 자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초에 그들은 열사가 모두의 기억으로 남기보다 자신들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들이다. 열사의 유가족들이다. 떠난 사람이 겪은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까.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리 조명을 받지 못한다. 대개는 열사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큰 슬픔을 떠안은 당사자로서 주변인들의 애도의 감정을 증폭하는 역할을 하다 시간이 흘러 서서히 잊히기 마련이다. 열사가 세상을 떠난 후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남겨진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유월의 아버지는 이렇게 남겨지고 잊힌 사람들을 다시 우리의 기억 속으로 호명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공무원 생활을 마친 후 목욕탕 주인을 꿈꾸던 한 평범한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전국 팔도를 누비는 민주화 투사가 되었는가에 대해 말한다. 박정기가 살아온 생의 시간을 일곱 시기로 나누어 그 삶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박정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박종철과 박정기의 개인사지만 기층민중의 눈으로 본 한국의 근현대를 압축한 통사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역사 속 굵직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의 시작은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예순 해를 살아온 박정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제 시절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의해 상투를 잘리고 돌아와 대성통곡한 기억으로부터, 강제징용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 그리고 해방 전후의 어수선함 속에서 서북청년단과 보도연맹, 빨치산으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절정에 달하여 서로가 서로를 해하던 근대 한국사의 끔찍한 비극들이 생생하게 증언되어 있다.

 

아침에 뉴스를 전한 뒤 그는 바로 학교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도연맹 사건에 희생된 것으로 추측했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누구도 김갑수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20)’

 

어쨌든 비교적 무사히 격동의 시기를 넘긴 박정기는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이 되어 나름 평탄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군사독재정권시기에 하도급을 하던 인부들의 노동조합결성에 도움을 주던 것과 관련하여 잠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인지해서라기보다 단순한 인정차원에서 행한 것이어서 곧 발을 뺀 관계로 별다른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정년을 1년 앞두기까지 박정기는 자신의 시선이 닿는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박정기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찾아온다. 자신의 자랑거리이던 둘째 아들 박종철의 죽음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보세요! 놀라셨죠? 이렇게 책상을 하고 치니까 하고 쓰러졌어요. 심장마비로 쓰러진 겁니다.” (49)

 

거짓말 같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런 일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곳이었다. 범죄자를 잡아야 할 경찰이 경찰서에서 여대생에게 성적으로 고문을 하고,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파헤치자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삼는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던 시절이었다. 박정기가 당한 일도 그랬다. 시대의 슬픈 유행어가 되었던 치니 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경찰이 가족 앞에서 한 것이다. 그들은 고문치사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종철의 시신을 재빠르게 화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한 것은 박종철과 같이 언제 어디서나 불의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외압에 굴하지 않고 사체 보존 명령을 내린 검사 최환, 경찰의 허위보고서 작성을 물리치고 고문치사라는 부검결과를 발표한 부검의 황적준, 고문치사의 배후가 더 있다는 것을 밝힌 교도관 안유와 한재동, 당시 수형자의 신분으로서 진상을 외부에 밝힌 이부영 등의 노력으로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박종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사람들의 이런 움직임들은 곧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됨과 동시에 박정기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한다.

 

그 외침은 역사의 소리요. 민족의 소리였어. 왜 하필 그 이름들 가운데 종철이가 있어야 했는지……. 철이 이름 뒤에 왜 열사라는 말이 붙게 된 건지……. () 6월 항쟁은 내 인생을 변화시켰고, 유가협으로 가는 징검다리였어. 내 삶이 다시 시작되었지.” (133)

 

아들이 꿈꾸던 세상을만들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시선을 달리하니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게 보였다.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로 찾아간 박정기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당시 유가협회장이던 이소선(전태일의 어머니)을 비롯하여 (필연적으로) 조금은 서글프게도 구성원의 상당수가 고령자로 구성된 이 단체는 자신의 자녀들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했다. 6월 항쟁의 거리에서부터 전대협 창립식, 선거부정을 밝히려다 추락사를 당한 고정희와 노동조합 결성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한 정경식 등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농성장까지 박정기와 유가협은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천릿길도 마다않고 찾아가 힘을 보태주었다. 차디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수십 일 동안 농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고 연행되어 유치장에 가는 것도 일상이었다. 자기 자신이 열사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은 자식이 이 세상에 살아있던 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식이 꿈꾸던 세상을 위해 헌신해왔다. 아마도 가족이 아니라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기록의 힘

 

아부지. 참말로 고생 많았어예.” (309)

 

이 책에는 박정기와 박종철 말고도 먼저 간 수많은 열사들과 남겨진 그 가족들이 나온다. 자그마한 체구를 가져 엄지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전경에게 집단구타당해 숨진 김귀정과 노점상을 하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 김종분, ‘사랑 때문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조성만, 군대의 비민주적인 관행을 거부하다 구타로 인해 사망한 이이동과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달라며 자결한 이이동의 아버지 이춘원 등 지면상 여기에 모두 기술할 수 없지만 모두가 다 하나하나씩 호명하고 싶은 이름들이다. 그 이름을 부르는 동안 그들이 겪은 고통이 생생하게 하나씩 손에 잡힐 듯하다. 기록을 담당한 저자의 성실한 노력과 담담하지만 가슴을 저리게 하는 문체 때문일 것이다.

 

박종철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 새 28년이 흘렀다. 아들이 떠난 후 힘든 사람들을 위해 전국 각지를 누빈 박정기의 나이 또한 벌써 여든 여덟이 되었다. 그동안 그는 박종철의 아버지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가 박종철을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되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이 말을 드리고 싶다.

아부지, 참말로 고생 많았어예. 남은 것은 이제 저희가 할랍니다.’

 

 

 

 

 

 




#저자 약력
김대현(金大賢). 1975년 충남 논산 생. 비평가, 소설가.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불온한 제국』이 있다. nobodaddy@naver.com
글쓴이 : 김대현
작성일 : 20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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