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Menu Body
플랫폼
웹진 검색하기          상세검색

 <b>프리즘</b>
HOME > 프리즘
  불행한 천재와 행복한 범재 사이에서
통권 : 55 / 년월 : 2016년 1,2월 / 조회수 : 772

불행한 천재와 행복한 범재 사이에서

 

장유정

 

빅터 우튼(Victor Wooten)

베이스 연주자로 유명한 빅터 우튼(Victor Wooten)의 동영상이 한동안 SNS에 자주 올라왔었다. 동영상에서는 빅터 우튼이 음악가들에게 음악을 한 단어로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저마다 대답한다. 음악은, 경험, 사랑, 인생, 감정, 혹은 전부라고 말이다. 그러자 빅터 우튼이 다시 말한다. 음악인들에게 물어보면 그 누구도 음악이 음표다음악이 음계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기타리스트나 베이시스트도 음악이 기타베이스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을 연주하기 전에 바로 음악인들이 음악이라 정의한 경험, 사랑, 인생, 감정 등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또 말한다. 경험, 사랑, 인생, 감정 등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알고 그것들을 잘 연주할 수 있어야 사람들도 그 음악가의 연주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조금은 길어 보이는 빅터 우튼의 동영상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서술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본질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 쪽은 천재에 대한 신화가 대체로 강력한 편이다. 수없이 많은 트레이닝을 거친 범재가 그 재능을 이미 타고난 천재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까? 테크닉이 상당히 뛰어난, 혹은 속주의 달인으로 불리는 누구가의 기타 연주를 보며 아무 감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때로 스캣(scat)을 미친 듯이 해대는 재즈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아무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물론 속주의 달인과 스캣의 여왕으로 불리는 누군가가 있어, 그들이 천재라거나 보이지 않는 그들의 무수한 노력들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음악적으로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하다 하더라도 그 음악에 그 사람의 영혼이, 그 사람의 사람됨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감응은 크지 않거나 오래 못 갈 것이라는 뜻이다. 빅터 우튼의 동영상은 음악 연주에 앞서 음악인의 삶과 그에 대한 태도가 왜 소중한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어떤 뛰어난 연주나 작품도 그 연주자 수준 이상을 넘어서기 어렵다. 내가 깊거나 넓어지지 않은 채 어찌 깊고 넓은 음악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가 말이다. 그 때문에 음악 이전에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감탄과 감동, 그리고 기술자와 예술가는 엄연히 다르다. 천재의 음악이 감탄을 줄 수는 있으나 그것이 항상 감동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가 전하는 감동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머리와 가슴의 거리는 지구와 해왕성의 거리만큼 멀기도 하다. 천재에게 인간성마저 좋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제까지 천재의 이미지는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괴팍한 모습과 연결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재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많은 것들, 혹은 천재라고 추켜세우는 분위기 등이 모두 옳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천재음악하면, 종종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떠올리게 된다. 살리에리는 평생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심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자신과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자신이 그들을 앞설 자신감을 잃은 채 조력자로서만 활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살리에리 증후군이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살리에리는, 그리고 오늘날 나를 비롯한 수많은 범재(그래, 난 확실히 범재)들은 왜 천재를 부러워하고 천재에 열등감을 느끼며 스스로 좌절하고 절망했던 것일까?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그 결과물에만 연연해서 소중한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은 비단 살리에리 시대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도 아주 자주 많이 발생하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한, 우리는 이른바 자뻑에 빠진 편협하고 오만한 천재모차르트를 양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천재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좌절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살리에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허나, 이것이 천재와 범재 모두에게 불행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불행하기 위해, 그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강조할 때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최근에 천재 소년으로 불리던 송유근의 논문 표절 사건이 우리 사회에 파문을 몰고 왔다. 결국 송유근의 논문은 게재 철회되고 말았는데, 속사정이 있긴 하겠으나 천재 소년이 표절 소년이 되고 만 상황을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무엇이 천재 소년을 표절 소년으로 만들었나를 보면, 역시 빨리 성과를 내라고 재촉하는 우리 사회에도 그 책임이 일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지 빨리 빨리를 외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천재는,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범재보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불행한 천재를 부러워하지 말고 행복한 범재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빅터 우튼의 말로 돌아가자. 음악을 연주하기 전에 우리의 경험, 사랑, 인생, 감정 등을 연주하자고 했었던 말 말이다. 아름다운 음악 내지 좋은 음악은 단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야말로 조화(harmony)’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단 이스트(Nathan East)나 데이비드 포스터(David Walter Foster)와 같은 음악 대가들은 모두 스튜디오 연주에서 중요한 것은 연주자의 태도라고 말한다. 태도가 바르고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안다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를 좋아하고 잘 할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신경질적인 연주자라면 다시는 스튜디오에서 함께 연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다시 말하거니, 불행한 천재보다 행복한 범재가 많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범재들이 모여 만들고 연주한 음악이 우리네 삶 곳곳에 번져가기를 바란다. 그 음악은 분명 우리에게 위로와 활력, 그리고 선함과 희망을 선사할 것이니




#저자 약력
張攸汀, 1972년 서울 생. 대중문화평론가. 단국대학교 교양기초교육원 교수. 최근 저서로 󰡔알뜰한 당신, 황금심󰡕, 󰡔노래풍경: 장유정의 음악 산문집󰡕, 󰡔근대 대중가요의 지속과 변모󰡕, 󰡔근대 대중가요의 매체와 문화󰡕 등. eujeong.zhang@gmail.com
글쓴이 : 장유정
작성일 : 2016/01/19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