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대화와 설득이 사라지고 맹목적인 의지만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개인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불굴의 의지로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든가, 소통을 포기하든가.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갖고 이 암담한 현실을 버텨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우린 안될 거야, 아마”라고 되뇌며 후자를 선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차마 소통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그것의 불가능을 인정할 수 없어 애써 원활히 소통하고 있는 척이라도 하든가, 아니면 깨끗이 인정하고 포기해버리든가.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는 후자의 선택을 취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선택은 분명 패배주의적이지만 문제없는 척 스스로를 속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정신적 균열과 정서적 고통을 생각해보면 합리적이고 현명하다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물론 소통을 포기하더라도 인간 본유의 소통에 대한 갈구까지는 어찌할 수 없어 온전히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활한 소통을 가장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을 끊임없이 타자화시키고 조롱하려 애쓴다. 그들을 사회부적응자, 잠재적 범죄자의 표상으로 삼고, 그들이 숨어버린 다락방을 일종의 감옥으로 묘사한다. 히키코모리의 선택을 합리적이라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차마 인정할 수 없던 것을 인정해버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마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히키코모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소통 일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며, 사카테 요지(坂手洋二)가 <다락방>을 통해 의도하는 것 역시 바로 그것이다.

[연극<다락방> 등장인물들]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항상 그것의 연원부터 밝혀야 한다. 그럼, 히키코모리를 만든 것은 무엇인가? 아니 더 근원적으로, 소통의 부재는 무엇 때문인가? 소통의 매개로서 기호, 언어가 갖는 불완전성,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 테지만, 이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늘 함께한 문제인 이상 차치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노동을, 더 나아가 인간을 물화시킨 자본주의 체제를 그 원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카테 요지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폭력에 맞섰던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가 온갖 티셔츠와 모자 속에 찍혀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것처럼, “너의 적을 알라(know your enemy)”, “권력을 되찾자(take the power back)” 그리고 “깨어나라(wake up)”라 외치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노래가 TV쇼 프로그램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빈번히 활용되는 것처럼, 연극 <다락방>에선 물화된 인간 존재를 거부하고 골방에 틀어박히기 위해 선택한 다락방이 상품화되어 대량 생산되고, 오리지널에 프리미엄이 붙어 팔려나간다. 적대적인 것마저도 모두 집어삼켜버리는 이 체제의 탐욕 앞에선 그 어떤 선택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절망적으로 선언하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이 불통의 시대를 함축하듯 <다락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첫 에피소드부터 서로 대화를 하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설명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발성은 대화 상대가 없는 것 마냥 독백의 톤을 유지하며, 대사처리 역시 노골적일 정도로 설명적이다. 히키코모리였던 동생이 죽은 다락방을 찾아온 형의 에피소드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는 소녀의 에피소드들, 다락방에서 죽은 토끼모자 남자의 에피소드, 그리고 히키코모리인 아들을 바꾸려고 하는 어머니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이들 에피소드들은 히키코모리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히키코모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은 히키코모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녀와 시체로 등장하는 토끼모자 남자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입장을 변명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아니면 오히려 자신도 소통을 포기한 지 오래라고 커밍아웃을 한다. 오히려 불안에 떨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것은 다락방 외부에 속한 이들인 것처럼 보인다. 다락방의 형태는 직사각형도 아니고 사다리꼴도 아닌 무정형의 꼴이지만 무게 중심이 아래쪽에 있는 안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불안정한 외부인들에 대응되는 다락방 안에 거주하는 히키코모리들의 안정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무대 표현인 셈이다.

토끼모자 남자의 에피소드에서 이런 안정적인 히키코모리들에 비해 불안정한 외부인들의 모습이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토끼모자 남자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은 실제로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은 고인의 뜻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척하지만,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시체의 독백처럼 그들의 이해는 철저한 오해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해의 부족은 그들 서로 간에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의 관계도 매우 서투르고 위태위태해 보인다. 서로가 다시 안 볼 완전한 타인임을 선언했지만, 그들 사이에 정을 통한 오누이가 섞여 있는 것처럼 그들의 관계는 불안정하고 꼬여있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이해를 말하며 오해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오해를 유도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는 가학이 되고 오해는 피학이 된다. 이때 이런 가학과 피학을 낳는 프레임은 흔히 ‘~다움’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히키코모리의 히키코모리다움, 형사의 형사다움, 무사의 무사다움, 선생의 선생다움, 그리고 오누이의 오누이다움과 시체의 시체다움. 개개의 인간을 그 자체로서 이해하지 않고 사회적 위치라는 틀에 의해 물화시켜 버리는 인식의 폭력이야 말로 이 불통의 시대를 야기한 원인에 다름 아니다. <다락방>은 이런 인식의 폭력을 끄집어 드러내고 조롱하는 수단으로 캐스팅을 활용한다. 아버지 역할에 여자배우를 기용하고 어머니 역할에 남자배우를 기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요컨대, 문제는 다락방도 아니고 히키코모리의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사물이고 하나의 선택에 불과할 뿐이다. 끊임없이 타자를 만들고 경계 지어야만 하는 그들 주위의 대다수 ‘평범한’ 이들이 그것을 문제로 만들어 낼 뿐이다. 아케치 코고로우(明智小五郞)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 1894~1965)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사의 독백처럼 범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탐정이며, 탐정의 욕망을 범인은 대행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그 둘은 동일인물이다. 연극 <다락방> 속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히키코모리들은 이미 다락방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반면 외부의 인물들은 다락방의 아래, 위, 옆 모든 곳에서 등장해 그들을 지켜본다. 관음증의 위협에 몸서리치는 다락방 외부의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흔히 여겨지는 것처럼 히키코모리가 외부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사람들이 그들을 욕망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락방 바깥의 사람들은 자아 또는 자기 집단을 규정하기 위해 그들을 타자화시킨다. 하천 노숙자들의 에피소드에서 노숙자들은 히키코모리도 아니고 그저 다락방을 거처로 삼았을 뿐인데 마을 의회의 의견으로 동네에서 거부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타자화는 결국 자기 이외의 모두를 타자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전쟁 에피소드에서 일본이 쇄국을 선언함으로써 나라 전체가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는 것은 그 끝없는 타자화에 대한 신랄한 조롱인 셈이다.

우로보로스의 신화
상술했던 것처럼 히키코모리는 인간 본유의 소통에 대한 갈구만 해소할 수 있다면 어떤 인생보다도 가장 안정적이고 그 자체로 완전한 삶의 형태다. 끊임없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시지프스(Sisyphus)의 삶도 아니고, 균열을 감내하고 살아가야 하는 삶도 아니다. 다락방은 히키코모리에게 편안함과 안전함, 그리고 완전함을 가져다주는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존재다. 다락방에 투영된 그들의 욕망엔 안전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모든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는 태아의 상태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가 깔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젊은 여자의 에피소드 중 “태아는 엄마 몸속에서부터 방콕이잖아, 인간은 태초부터 방콕이야”라는 그녀의 대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고로 일어서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형이 그를 위해 만들어놓은 다락방에 누워있는 다락방 헌터다락방의 히키코모리들이 구원을 요청할 때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은 그 욕망이 다소 역설적으로 실현된 모습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형은 결코 다락방 헌터의 완전한 안식처를 만들어줄 수 없다. 형에게 결여된 것은 단지 불편한 다리뿐 아니라 그를 품어낼 수 있는 자궁이기도 한 까닭이다. 결코 회귀의 욕망은 실현될 수 없다. 단지 꿈꿀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회귀를 통한 완전함의 추구는 자기 꼬리를 삼키는 뱀 우로보로스(ouroboros)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스스로를 먹어 삼킴으로써 자신으로 돌아가는 우로보로스는 완전함의 상징인 동시에 무(無)의 상징이기도 하다. 완전하다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락방>에서는 이러한 모순적이고 불가능한 자기 회귀, 자기 참조의 모티브를 집요하리만치 반복하고 변주한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사카테 요지는 연극 <다락방>이 단지 히키코모리의 등장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텍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순과 무지로 가득한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텍스트이기도 함을 암시한다.

<다락방>에서 동생을 잃은 형이 다락방의 제작 현장을 찾아내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극 속 모든 에피소드들이 다락방, 즉 그를 위해 설계, 제작된 자궁 안에 누워 있는 다락방 헌터의 꿈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란 통속에 놓여있는 뇌일 뿐이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 뇌에 가해지는 전기적 신호에 의해 꾸는 꿈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통속의 뇌 논변처럼 모든 에피소드들은 그의 꿈인 동시에 그의 삶이기도 하다. 누가 꿈이 현실이 아니라고,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것이 꿈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다른 모든 에피소드들의 인물들은 결국 그가 만들어낸 인물인 동시에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토끼모자 남자의 에피소드에서 다락방 헌터는 오히려 이것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 토끼모자 남자의 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누가 누구의 꿈을 꾸는 것이란 말인가?

이러한 실체, 실존에 대한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같은 배우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형사, 자객, 군인의 에피소드는 토끼모자 남자가 빌려봤다는 형사물, 시대물, 전쟁물과 같은 영화들과 겹쳐진다. 소설, 연극, 영화가 하나의 환상이라는 면에서 보면 결국 꿈속의 인물이 다시 꿈을 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일종의 메타언어처럼 한 단계 한 단계 자신을 참조하면서 꿈은 다층의 구조를 이루어간다. 한편으로 형사와 자객, 군인들도 역시 서로를 인식한다.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만이 다른 이야기를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병렬적인 에피소드들마저도 서로를 참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형사(혹은 자객, 군인)들이 데자뷰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에피소드들이 단순한 꿈, 환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임을 의미한다. 전생과 윤회라는 종교적 믿음에 이끌리고, 때때로 삶과 시간의 층위가 하나가 아닐지 모른다고 의식하기도 하는 우리의 삶과 형사, 자객, 군인의 에피소드 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이러한 자기 참조는 단지 꿈과 꿈 혹은 삶과 삶 사이, 각각의 층위 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젊은 여자의 에피소드에서 사카테 요지는 하나의 삶 속에서도 자기 참조, 순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려 애쓴다. 젊은 여자는 고기를 먹는 것에 집착하는 한편, 임신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다. 극 중 대사처럼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고깃덩이가 고깃덩이를 먹고 낳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가 이루어지는 무대가 사람이 죽어 내부가 피바다가 되었던 다락방임을 상기시킨다. 죽음과 삶도 그 순환 안에 있다. 토끼남자가 본 영화들, 형사, 자객, 군인의 에피소드인 형사물, 시대극, 전쟁물 역시 그러한 맥락 위에 놓여있다. 장르적 관습이 강력한 형사물, 시대극, 전쟁물은 그 장르를 이루는 영화들이 그 장르의 관습을 만들어내고 다시 그것이 다음 영화의 규율로 작용하는 자기 참조의 한 예다.

이와 같이 자기 참조의 모티브는 각각의 이야기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거듭되고, 질문은 집요하리 만치 계속 되풀이 된다. 하지만 누구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귀신-환상은 누구고 인간-실체는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 치는 산장 에피소드 속 두 남녀는 결국 우리의 모습이다.

<다락방> 연출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자기 참조의 모티브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하다. 이는 희곡 텍스트에 실려 있는 담론의 크기가 크고 묵직한 만큼 그것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효과와 다른 상상력을 배제한, 절제된 연출을 통해 최대한 극과 관객 사이의 소통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확연히 눈에 띄는 거의 유일한 무대 연출인 다락방을 둘러싼 커다란 액자형 프레임조차도 아주 전형적인 자기 참조의 관습적 장치이며, 관습적인 만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욱 선명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이 액자형의 무대 구성은 단순히 프레임 안의 이야기를 관객이 들여다본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에피소드 간간히 프레임 밖의 인물이 나타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논평하기도 하고, 그 프레임이 뉴스 보도 화면으로 활용되기도 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 프레임의 존재를 각인시키면서, 극 자체도 다층적인 층위로 관객 앞에서 상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로써 이 극을 보고 있는 우리도 그 다층적인 층위 가운데 어디 즈음에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히키코모리는 그리고 우리는 우로보로스의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락방>에서 집요할 만큼 되풀이되는 실존과 소통에 대한 질문은 결국 구원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다락방 속 인물들이 끊임없이 다락방 헌터의 그림을 옮겨 그려 구원의 주문을 외는 것처럼 말이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지치고 권태에 빠져있으며, 이 끝없는 자기 참조와 순환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이런 그 안에 갇혀버린 소통 없는 인간에게 구원이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이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벽에 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다락방 헌터 스스로 말하듯, 그것은 자신이 살아간 흔적을 새기는 것이며, 따라서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은 그림뿐이 아니다. 그 흔적이야 말로 자신의 정체성이고, 실존의 증거다. 태초부터 인류는 동굴에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 흔적이야말로 한 인간의 삶이 그저 의미 없는 또 하나의 반복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다락방>에서 다락방은 바로 그 태초의 동굴에 대응하는 장소다. 연극 시작 전부터 들리는 동굴 속에 물방울이 고여 떨어지는 울림소리가 그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다락방에 사는 사람들은 벽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관객이 볼 수 없는 면에 구원의 그림을 그리는 벽면을 위치시킨 무대는 그에 대한 암시다. 다락방 안에서 죽은 동생이 끝까지 다락방 헌터를 부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간 흔적을 남기지 않고자 했으며, 그로써 존재가 사라지면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사라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스스로 구원하지 않는 이에게 어떻게 구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소통조차 포기하고 존재조차 포기한 이들에게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영원한 순환과 끝없는 자기 참조의, 우로보로스의 꿈뿐인 것이다.

[연극 <다락방>포스터]

하지만 구원을 갈구한다고 구원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구원을 갈구하기는 하지만 왜, 어떻게 구원받아 어떤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역시 구원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다락방 헌터는 그림이 그려진 모든 곳에 나타났어도 실제로 그가 구원해줄 수 있었던 사람은 히키코모리에게 감금되어 순수하게 생을 갈구했던 소녀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토끼모자 남자의 시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 말할 뿐이며, 젊은 여자에겐 자신의 그림을 지워달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이 왜 구원을 청해야 하는지, 진실로 구원을 바라는지 혹은 그것이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구원을 바랄 뿐이었다. 이는 젤소미나(Gelsomina)를 버리고 도망간 잠파노(Zampana)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1920~1993) 감독의 영화 <길La Strada>(1954)의 남녀주인공들 즉, 자진해서 구원의 마리아 곁을 떠난 인간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구원을 믿지 않으면서 그것을 바라는 모순은 어리석음이라기보다 오만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고 그에 심취하는 인간에게 소통과 구원은 자신의 고통을 장식하는 하나의 장신구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는 인간 자신에게 있으며, 그러기에 연극 <다락방> 속에서 다락방이란 모든 문제의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맥거핀(MacGuffin)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떤 사실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꾸며 독자나 관객의 주의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다락방은 산 속 임시 보호소가 되기도 하고, 전쟁터의 벙커가 되기도 하고, 강가의 노숙자 숙소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락방을 창도 없고, 문도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꾸며놓은 것은 결국 그 모호함을 의도한 무대 연출이다. 아무리 물신화가 대세가 된 시대라 하더라도 불통의 시대를 만들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지 대상이 아니다. 전쟁 에피소드에서 군인은 “이 상자 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으면 어디에 있든 같다”고 말하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다락방 헌터는 (또는 형의 죽은 동생은) 길을 잃었을 때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자기 참조의 끝없는 고리를 끊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고리 밖을 향해 발버둥 친다. 그런 까닭에 다락방 안에 있건 밖에 있건 모든 인물들은 소통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끊임없는 자기 참조의 반복적 순환만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순환의 고리는 내버려두고 주어진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관습적인 이해의 틀과 속박들을 깨버릴 때에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클리쉐(Cliché) 상투적인 표현이나 인식로부터 자유로운 SF로 전향함으로써 형사물, 시대물, 전쟁물을 똑같은 모습으로 떠돌던 두 인물들이 탈출을 꿈꾸게 된 다음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커다란 검은 틀이 사라지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로보로스’를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일일지 모른다. 그저 물고 있는 자신의 꼬리를 놓으면 될 뿐이지 않은가? 우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건 사실 항상 같은 곳을 맴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락방 헌터, 혹은 형의 죽은 동생은 꼭 한 번 더 만나기로 했던 곳에 처음부터 계속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곳에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외면해온 삶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지 제공_ 아르코예술극장


심의평-공연평론

연극의 사유성을 천작해내는 안목이 인상적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들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원론적인 담론으로 출발하여 글의 흥미를 훼손하는 글쓰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듯하여 아쉬움도 남지만 그 가운데 연극 <다락방>(아카테 요지 작/연출)을 분석한 「히키코모리, 우로보로스가 되다」는 작품의 시의성을 다양한 문화이론으로 맥락화하면서 이 번역극이 한국에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소통될 수 있는 보편성이 있음을 증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소 경직된 이론적 글쓰기가 필자의 감각적인 작품분석을 건조하게 만들고 있으나 연극의 사유성을 천착해내는 안목과 인문학적 깊이가 인상적이다.

당선소감

이번 당선이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박병규

이런 자리에 서게 된 것 치고 조금 뜬금없지만,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입니다. 극작을 전공하는 친구가 권해서 응모를 하긴 했는데 수식과 실험장치를 갖고 매일 골치 썩는 공대생이다 보니 당선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글 쓰는 재미에 써본 것이 당선이 되어 그리 실감도 안 나고 얼떨떨합니다.
혼자 책 읽고 공부하고 가다듬은 생각과 관점들이 소통될 수 없는 방향으로 아주 엉뚱하게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당선 자체의 기쁨보다 더 크게 다가옵니다. 전공 분야 외에도 인문, 사회학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틈틈이 공부해오긴 했지만 계속 혼자서 해오다 보니 요즘 스스로 만든 틀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이번 당선이 어떤 의미로든 전환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응모를 권해준 친구,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특히 더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